<자석의 과학을 쉽게 풀어낸 마법같은 책>
네덜란드의 수학자이자 수학 역사가인 반 데어 베르덴은 물리학을 설명하는 방법을 독단적인 방법, 역사적인 방법, 혼합 방법의 세 가지로 나누고, 이 중 역사적인 방법을 따라야만 선배 물리학자들이 이론을 발전시켜온 아이디어를 한 걸음씩 따라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 소개할 '마법에서 과학으로'는 역사적인 방법으로 쓰인 책이다. 초기 인류가 전기를 느낀 그 순간부터 현대 자석 물리의 최전선 '스핀트로닉스'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으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스핀(SPIN)'의 저자 이강영 교수님도 지적했듯, 독단적인 방법으로 작성된 대부분의 과학 교과서를 읽은 독자들은 과학이 탄생할 때 부터 아주 정교하며, 완벽하게 합리적이었던 것 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과학사를 살펴보면 과학은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소위 '맨 땅에 헤딩'하듯, 지금에 와서는 바보같아 보이는 노력을 통해 한 발자국씩 전진해왔다. '마법에서 과학으로'의 첫 장은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준다. 18세기에는 클라이스트와 뮈센브루크가 인류 최초로 물이 담긴 병에 전기를 모았고, 프랭클린은 번개가 전기임을 보이기 위해 연을 비구름 속으로 날렸다. 이후, 쿨롱이 '쿨롱의 법칙'을 통해 전기력을 수식적으로 설명하는데 성공했고, 18세기 말 ~ 19세기 초가 되면서 전기와 자기에 대한 이해가 급속도로 높아졌다. 볼타는 최초의 전지를 만들어냈고, 외르스테드는 전류가 자기를 수직한 방향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발견해낸다. 이는 페러데이로 하여금 전기와 자기가 서로를 만들어낸다는 전자기 유도현상을 발견하게 했고, 이후로 우리 인류의 삶이 통째로 바뀌게 된다. 멕스웰은 4개의 방정식으로 이 발견을 정리한다. 이 4개의 방정식을 통해 전자기장은 파동이며, 이 파동의 속력은 빛과 같다는 중요한 사실, 즉 빛이 곧 전자기파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냄으로써 전자기학문을 완성했다. 이후 책은 전자기의 근원과 스핀, 스핀트로닉스라는 새로운 학문의 탄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그리고 스핀트로닉스가 보여줄 미래모습에 대해 다룬다.
밑에 '더보기'로 접혀있는 글은, 책의 많은 내용을 요약해두었다. 강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책을 읽으려 하는 독자는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보려면 '더보기'를 클릭하라)
앞서 전류가 흐르면 자기장이 유도된다는 사실을 외르스테드가 알아냈는데, 어떻게 자철석같은 물질은 전류를 흘리고 있지도 않은데 자성을 띄고 있을까? 물리학자들은 전기와 자기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톰슨은 음극선 실험을 통해 전자를 발견해냈고, 전자가 전기의 근원임을 밝혀냈다. 이후 러더포드, 보어, 로렌츠, 드 브로이 등의 당시의 걸출한 물리학자들이 원자의 구조를 연구하여 양자역학이 탄생하게 된다. (물론 이 당시 분광학 연구, 흑체복사 연구 등도 양자역학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럼 자기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제이먼은 자기장을 가하면 선스펙트럼이 변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알아냈다 (제이먼 효과). 또, 전자의 회전축이 고정된 상태에서 자기장을 가하면 또 다시 스펙트럼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보였다 (비정상 제이먼 효과). 이를 크로니히, 울렌벡, 호우트스미트가 전자가 자전한다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한다. 이를 '스핀'이라고 이름 붙였다. 요약하면, 자기의 근원은 스핀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하자). 하나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실제 전자는 자전하고 있지 않다. 책에서는 '스핀'을 '질량', '전하' 와 같이 물질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성질 중의 하나이면서, 양자역학적으로 밖에 설명 되지 않는 미스터리한 각운동량 정도로 정의를 하고 있다. 1922년에 오토 슈테른과 발터 게를라흐는 그 유명한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을 통해 스핀이 양자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한다. 또, 이 실험을 통해 전자의 스핀은 스핀 업 |↑> 과 스핀 다운 |↓>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전자는 페르미온이라서, 파울리 배타원리에 의해 지배받아 하나의 양자상태에 같은 스핀을 갖는 전자가 둘 이상 들어갈 수 없다. (하나의 양자상태에는 하나의 전자밖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제 원자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뭉쳐서 상호작용하는 것을 우리는 물질이라고 부르고, 물질이 자성을 띄면 자성체라고 한다. 모든 원자 궤도에 전자가 두 개씩 (업과 다운) 모인 물질의 경우, 스핀이 모두 상쇄되어 반자성체(diamagnet)이라고 한다(헬륨, 네온, 아르곤, 물($H_2 O$ 등)). 반자성체에 강한 자기장을 주면 공중에 띄울 수 있는데, 초전도체는 저항이 0인 완전 반자성체라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자기장으로도 공중부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원자 궤도에 전자가 한 개 가지고 있으면서 전체적으로는 중구난방인 경우, 상자성체(paramagent)이라고 한다. 마찬가지 경우이지만, 전체적으로 방향성이 있는 경우 강자성체(ferromagnet)이라고 하고, 만약 이웃한 원자의 스핀이 반대인 경우에는 반강자성체(antiferromagnet)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반강자성체와 배열은 같지만 업스핀과 다운스핀의 크기가 달라 완전히 상쇄되지 않는 경우를 준강자성체(ferrimagent)이라고 한다. 즉, 원자의 스핀 배열이 어떻게 되는가가 물질의 자성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의 스핀배열은 어떤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질까? 자연은 항상 에너지를 낮추는 방향으로 자발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원자 스핀들은 교환 상호작용 에너지(exchange interaction)가 낮아지는 방향으로 배열된다. 이 교환 상호작용 때문에 강자성체가 되기도, 반강자성체가 되기도 한다. 그럼 스핀이 중구난방인 상자성체는 무엇때문에 그런가? 그것은 우리 상온의 열에 의한 열적요동 때문이다. 강자성체에서 상자성체가 되는 온도를 퀴리 온도(Curie temperature)라고한다. 쉽게 말하면 교환상호작용 에너지가 열에너지보다 크면 (퀴리온도 보다 낮으면) 강자성체가, 그 반대라면 상자성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온에서 강자성체로 존재하는 물질들 - 철, 니켈, 코발트, 가돌리늄 - 은 교환 상호작용 에너지가 그만큼 큰 것이다. 그럼 철은 강자성체인데 왜 상온에서 자석은 아닐까? 이는 철의 국지적인 영역에서 이웃한 스핀들끼리는 방향이 같지만, 전체적으로 영역들끼리 스핀 방향이 무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이 영역을 '자구 (magnetic domain)'이라고 한다. 여기에 외부 자기장을 걸어주면 쉽게 정렬시킬 수 있고, 심지어는 외부 자기장을 없에도 한참 동안 스핀 정렬을 유지하고 있는다. 이렇게 자석에 대한 이해가 쌓이면서, 인류는 아주 강한 자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노기술이 발전하면서, 심지어는 원자를 층층이 쌓아 인공격자를 만들어 인공자석을 만드는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 층간 교환 결합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이는 자성 물질 사이에 비자성 물질을 넣고, 비자성 물질의 두께를 조절할 때 교환상호작용의 크기가 바뀌는 현상이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은 더 강한 결합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1980년대), 알베르 페르와 페터 그륀베르크가 인공 격자 구조에 전류를 흘리는 발상을 함으로써, 거대 자기 저항 효과(Giant Magnetoresistance, GMR)을 발견하고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라는 학문을 발생시켰다. 인공 격자 구조에 전류를 흘린다는 것은, 곧 스핀의 흐름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다. 전자가 흐르면서 산란하면, 전자의 스핀 또한 바뀌기 때문에 '스핀의 흐름'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인공 격자 구조가 가능해지면서, 스핀이 바뀌지 않는 '특정 거리'를 알아냈는데, 이를 스핀 감쇄 길이라고 부른다. 즉, 스핀 감쇄 길이 안에서는 스핀의 흐름을 정의할 수 있게 된다(대게 원자 몇 개~ 몇 십개 거리라고 한다.). GMR은 인공격자에 전류를 흘렸을 때, 두 자성층이 평행인 경우 저항이 아주 작고, 반평행인 경우 저항이 아주 커지는 효과이다. 움직이는 전자 또한 스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슬론제스키와 베르자는 전류의 흐름 또한 자석 방향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스핀 전달 토크를 발견하게 된다. 스핀을 가진 전자는, (외부 자기장이 없어도) 이동하며 각각 다른 방향으로 휘게 된다. 이를 Spin Hall effect라고 하는데, 2004년에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즉, 한 방향으로 정렬된 스핀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스핀 홀 이펙트는 자석이 아닌 물질에서도 발견된다. 이를 통해 Spin current라는 새로운 개념도 등장한다. 스핀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인 셈이다. 책에서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다.
"스핀이 오른쪽으로 흐른다는 것은, up-스핀은 오른쪽으로, down-스핀은 왼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스핀 전류는 전류와 달리 열을 내지 않으면서 정보전달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스핀 제백 효과, 아인슈타인-드하스 효과등에 따르면 열과 회전또한 정렬된 스핀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앞에서 다룬 자석에 대한 연구를 실용적으로 어떻게 쓰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스핀을 어떻게 새로운 정보전달소자로 사용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다룬다. '스핀파'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설명이 등장한다. 이 챕터에서 저자인 김갑진 교수님은 연구에 막 발을 딛기 시작한 대학원생 시절부터 레이스트랙 메모리를 15년간 연구하고 계시다고 했다. 대학원생 시절 이야기가 짧게 쓰여있었는데, 내년부터 대학원에 입학하는 입장으로서 선배 연구자의 이야기가 경외롭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책을 읽으며 순수하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았던 것을 궁금해 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책 제목처럼 마법처럼 느껴졌던 현상을 이해하고, 비로소 과학이 되어 인류 지식의 한계를 넓혀왔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어려운 내용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적절한 비유와 깔끔한 설명을 통해 수식 한 줄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책을 읽으며 자성, 스핀 연구에 대한 교수님의 열정과 애정이 느껴져 지루할 틈 없이 읽었다. 우리 근처에 항상 존재하지만 낯설었던 자석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하기를 권한다.